12년 소송에도 ‘휠체어 탑승 시외버스 0대’ 장애인단체, 인권위에 “헌재 의견 제출해야”
장애인단체·국회의원, 구체적·현실적 개연성 이유로 7개 노선만 인정한 법원 판단 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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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화)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행된 '장애인 시외이동권 재판소원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제출 촉구 기자회견'
지난 2014년 시작된 장애인의 시외·광역버스 이동권 보장 소송이 헌법재판소의 본안심리로 이어진 가운데, 장애인단체와 국회의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헌재 의견서 제출을 촉구했다.
국회의원 김예지, 서미화, 최보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등은 9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8조에 따라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재판소원 사건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시외버스와 광역형 시내버스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등 적극적 조치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12년 전 제기된 소송은 1·2심과 대법원 판단을 거쳐 현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권리구제의 범위를 당사자가 실제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일부 노선으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핵심 쟁점이다.
12년 소송 끝에 남은 ‘7개 노선’
앞선 재판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장애인의 이동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인정했다. 이동권에는 교통수단을 선택할 자유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이 인정한 적극적 조치의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11월 27일 선고한 2022나2007608 판결에서 원고들의 현재 주거지와 직장, 가족관계 등을 기준으로 장래 이용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인정되는 7개 노선에 대해서만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등의 조치를 명했다. 원고들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26년 4월 16일 선고한 판결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원고들은 법원의 판단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권리구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인정했으며, 대법원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과 평등권 등에 관한 헌법적 쟁점을 실질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2026년 3월 재판소원 제도가 본격 시행된 이후 이 사건은 엄격한 사전 심사를 거쳐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본안심리에 회부됐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사단법인 두루 한상원 변호사
사단법인 두루 한상원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을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기본권이 장애인의 실제 삶과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라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구조적 차별로 인해 시외 이동을 할 수 없었던 청구인에게‘시외 이동을 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제조치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차별의 결과를 도리어 권리구제의 범위를 축소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라며 “그 자체로 이중의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은 특정 도시를 방문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노선을 이용할 것인지’를 사전에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비장애인이 언제든 원하는 도시로 이동할 자유가 있듯이 장애인의 이동권도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자의 부담이나 버스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다면 이를 이유로 권리구제의 범위를 축소할 것이 아니라, 모든 노선의 접근성 개선을 목표로 시기와 순서, 비율을 정해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과거 휠체어 승강설비의 단계적 설치를 권고한 바 있다.
“2시간 30분이면 갈 거리를 7시간 넘게 가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인의 광역 간 이동 현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됐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초록 국장은 대구에 거주하는 한 휠체어 사용 장애인 활동가가 통영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하기 위해 이동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대구에서 통영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약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휠체어 사용자인 당사자는 기차와 특별교통수단 등을 여러 차례 이용하며 7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초록 국장은 “2시간 반에 걸려 갈 수 있는 거리를 7시간이 넘게 가는 것, 그것을 인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 역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이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없어 명절이나 휴가 때 고향이나 친인척을 만나러 가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지금 당장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 차별의 시정기구로서 장애인이 시외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러한 현실이 차별임을 헌법재판소에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하지 못했던 과거가 이동할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아람 팀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아람 팀장은 현장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차별을 경험한 뒤 다시 자신의 권리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에 주목했다. 김 팀장은 “당사자에게 가장 큰 상처와 부담이 되는 것은 차별 그 자체만이 아니”라며 “차별을 입증하고 자신의 필요를 설명하고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불편한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법원이 요구한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앞으로 이 노선을 이용할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연성을 증명하라는 것은 결국 장애인에게 이동할 권리를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버스를 타야만 하는 아주 간절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평생 증명하며 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김 팀장은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당사자의 주거지나 직장, 가족관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애초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제공되지 않은 구조적 차별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단순히 특정한 몇 개의 버스 노선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설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며 “장애인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어디로 갈지, 누구를 만날지, 어떤 내일을 꿈꿀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엄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동안 축적해 온 장애인 이동권 관련 조사와 판단, 국제인권기준을 헌법재판소에 적극적으로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진우 활동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진우 활동가는 비장애인 친구와 직장 동료들이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차별을 이야기했다. 유 활동가는 “나는 버스를 타고 어딜 가지 못하는데, 비장애인 동료들이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법원이 당사자에게 특정 노선을 이용할 구체적인 이유와 개연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시민들은 어디 갈 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이동합니까?”그는 누구나 갑자기 강릉에 가고 싶을 수도 있고, 친구와 놀러 가고 싶을 수도 있다며, 장애인에게만 사전에 특정 노선을 이용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유 활동가의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현실의 제약은 반복된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가 없어 기차와 장애인콜택시 등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애초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시외버스를 타본 경험이 없고,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노선을 이용하고 싶다는 욕구를 어떻게 미리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유진우 활동가는 서울·경기지역 시외이동권 소송 원고 당사자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8조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에 법률상의 사항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앞서 2015년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의 단계적 의무화를 권고했으며, 2017년에는 시외·광역버스에서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지 않는 것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로 판단한 바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고속·광역버스를 확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또한 지난 8월에는 이번 소송의 청구인을 포함한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시외·광역버스 이동권 침해와 관련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개인진정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단체와 국회의원들은 김예지·서미화·최보윤 의원의 서명이 담긴 의견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전달했다.
▲9월 22일(화)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행된 '장애인 시외이동권 재판소원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제출 촉구 기자회견'
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요구한 핵심은 세 가지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점, 차별적인 현실을 이유로 권리구제의 범위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 시외·광역버스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헌법재판소에 밝혀 달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12년 전 시작된 소송의 마지막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동시에 2026년 3~4월 전국 7개 지역에서는 새로운 장애인 시외·광역버스 이동권 차별구제소송이 다시 제기됐다.
첫 소송이 시작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은 자신이 어느 노선을 이용할 것인지,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특정 장소에 갈 필요성을 미리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동하지 못했던 현실 자체를 권리구제의 범위를 제한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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