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난, 다른 위험… 아시아태평양 서울포럼 장애인 재난 불평등 논의
당사자 참여와 일상 지원의 연속성 강조…의료·돌봄·주거 연결한 재난 대응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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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제3회 한-아시아태평양 장애인당사자 서울포럼’ 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서는 장애인의 생활 여건을 반영한 재난 대응과 당사자의 정책 참여 필요성을 논의했다.
같은 재난도 누구에게나 같은 위험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주거환경과 경제적 여건, 정보와 이동수단에 대한 접근, 일상에서 받는 지원에 따라 피해와 대응 가능성은 달라진다. 장애인의 재난 대응을 논의할 때 평소의 생활과 필요한 지원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열린 ‘2026 아시아태평양 장애인당사자 서울포럼’ 기후위기·재난 세션에서는 이러한 생활 조건이 재난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짚었다. 한국장애인연맹이 주관한 이날 세션에는 네팔과 인도네시아, 한국의 발표자들이 참여해 각국의 경험을 나누고, 당사자와 함께 재난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디피카 라마 네팔 원주민 장애여성 권익옹호단체 매니저가 온라인으로 장애여성의 재난 경험과 대응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긴급’ 대응, 긴급 ‘대응’ 아닌 일상 지원으로
첫 발제를 맡은 네팔 원주민 장애여성 권익옹호단체의 디피카 라마 매니저는 재난 피해를 자연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라마 매니저는 “경보가 발령됐다고 모두가 그 정보를 이해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용할 수 없는 교통수단과 대피소, 의료와 지원서비스의 중단에 빈곤과 젠더에 기반한 차별까지 겹치면 장애여성의 위험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접근성은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정보를 받고 필요한 지원을 선택하며,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장애여성과 당사자단체가 회의 참석을 넘어 재난정책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루나재단 네팔의 코이랄라 선임매니저는 홍수 이후 장애인을 찾아 지원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공백을 소개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체계가 부족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찾아내기 어렵다”며 “보조기기를 잃어도 개인의 필요에 맞는 기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임시 대피시설과 조기경보도 모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재활과 보조기술, 접근 가능한 주거와 필수서비스, 생계 회복까지 장기적으로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하며 구호·복구·재건의 모든 단계에 당사자단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 기반과 역량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예니 로사 디마얀티 인도네시아 정신건강협회(IMHA) 활동가가 폭염이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고 있다.
만조로 침수된 시설, 정부 자료에서도 보이지 않는 피해
인도네시아 심리사회적 장애여성단체(IMHA)의 예니 로사 디마얀티 회장은 폭염과 만조로 인한 침수 등 기후재난 속에서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겪는 피해와 지원의 공백을 짚었다.
디마얀티 회장은 “시설을 방문했을 때 거주자들이 대피하지 못한 채 물이 찬 방 안에 며칠 동안 머물러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침수된 방에 그대로 남겨져 것이다”고 말하며 자바섬 북부 해안지역에서 만조로 물에 잠긴 시설에서 수일간 방치된 당사자들의 사례를 설명했다.
그는 “시설에서는 방 밖으로 나오는 일도,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는 일도 직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며, 시설수용과 당사자의 결정권 제한이 재난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정부 자료의 부재도 주요 문제로 제기했다. 디마얀티 회장은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기후위기로 어떤 피해를 겪는지에 대한 정부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며 전국 단위의 근거자료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자료에서 보이지 않으면 정책에서도 누락될 수 있다.”며 단순한 자료의 공백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피해를 겪고, 약과 지원이 얼마나 끊겼으며, 누가 예산과 계획에서 빠져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장애 유무뿐 아니라 장애 유형에 따라 다른 경험과 지원 필요를 파악할 자료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염 대응에 대해서도 “시원한 곳으로 가라고 하지만 갈 곳이 없고 전기요금과 교통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물·전기·의료·주거와 소득 지원을 기후위기 대응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위험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실제로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마얀티 회장은 “위험을 키우는 것은 개인의 장애만이 아니라 빈곤과 주거환경, 시설수용과 서비스의 장벽이다”라며, 시설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원빈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 연구의장이 장애청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 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내와 학교·직장 사이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한국장애인연맹 김은정 국제협력팀장은 재난 대응을 평소의 지원과 연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팀장은 “경보와 대피시설을 마련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평소 이용하던 의료서비스와 활동지원, 주거와 생활지원이 재난 상황에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위험을 겪고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다”라며, 장애여성의 경험을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 최원빈 연구의장은 장애청년 인터뷰를 통해 획일적인 폭염 안내의 한계를 짚었다.
최 의장은 “위험을 몰라서 외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위험을 알아도 학교와 직장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내만으로는 장애청년의 생활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인터뷰에서는 햇볕에 휠체어 팔걸이가 달아올라 이동이 어려웠던 경험, 땀과 습기로 인공와우가 고장 날까 걱정하며 외출을 줄인 경험이 나왔다. 경로당 등 노인이 주로 이용하는 무더위쉼터에 청년으로서 들어가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 의장은 “일상에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재난 때 장애인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과 연결된다”며, 당사자의 정책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사자를 일시적인 자문 대상으로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미디어센터 센터장이 〈함께걸음〉을 소개하며 발언하고 있다.
한 사람의 필요를 중심으로 지원을 연결해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미디어센터 김영연 센터장은 코로나19와 폭염 취재 경험을 통해 정보 제공과 실제 지원 사이의 간격을 짚었다.
김 센터장은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도 왜 집에 있어야 하는지, 언제 다시 출근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발달장애인이 있었다”며, 자가진단키트를 받고도 사용법을 몰라 한 번도 쓰지 못한 사례를 함께 소개했다. 이어 “정보를 배포하는 것과 당사자가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다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폭염과 감염병은 모두가 한꺼번에 대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재난이 아니다”라며, “집과 시설에서 계속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대피소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생활공간에서 필요한 지원과 돌봄을 이어갈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별 재난지원계획도 제안했다. 김 센터장은 “누가 안부를 확인하고 재난정보를 설명할지, 어디로 이동하고 어떤 약과 보조기기가 필요한지 미리 정해야 한다”며, 돌봄이 끊겼을 때 대신 지원할 인력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이 각각 잘 마련돼 있어도 당사자에게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이미 있는 정책과 자원을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혼자 대피할 수 있는지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당사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파악하고 돌봄과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지, 재난 이후 익숙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논의에서 반복된 문제는 위험을 알리는 안내와 그 안내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생활 여건 사이의 간격이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말 앞에는 학교와 직장이 있었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라는 말 앞에는 전기요금과 교통수단, 시설 직원의 결정이 있었다. 재난에 대비한다는 것은 이러한 일상의 조건을 살피고, 한 사람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지원을 미리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김 센터장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부터 장애인의 삶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지원을 촘촘하게 준비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번 포럼이 “장애인을 위한 재난 대응을 넘어서 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재난 대응체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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