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를 ‘우범자’와 연결한 대통령의 발언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성명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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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0월 14일에 업로드한 sns(X) 갈무리
정신질환자를 ‘우범자’와 연결한 대통령의 발언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 범죄 예방 대책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과 입원 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
인천 흉기난동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는 반드시 예방되어야 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이 또 다른 시민들에 대한 편견과 낙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4일 SNS를 통해 인천 흉기난동 사건과 관련하여 “묻지마 범죄가 최소화되도록 예방조치에 힘쓰겠다”며 “우범자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발언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정신질환자는 ‘우범자’가 아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 위험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무차별적인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대책이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통제와 관리로 향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범죄의 원인은 개인의 범죄 전력과 폭력성, 처해 있던 환경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 규명되어야 하며,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신질환을 범행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범죄 예방 대책은 정신질환 여부가 아니라 개인의 범죄 전력 등 구체적인 위험 요인에 근거해야 한다.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해결책을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전 입원이나 격리, 통제와 관리에서 찾는다면, 실효성 있는 범죄 예방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범죄와 무관한 수많은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편견과 불이익을 안길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한 개인이다. 그 책임은 구체적인 사실과 행위에 따라 물어야 하며, 범행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정신질환자 전체가 그 책임을 함께 짊어지게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언어는 정부 정책의 방향이 되고, 언론의 언어가 되고, 결국 사회가 특정 집단을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최고 책임자의 발언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는 이미 오랜 시간 ‘위험한 사람’, ‘예측할 수 없는 사람’, ‘격리하고 관리해야 할 사람’이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왔다.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수많은 당사자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에서 배제되고, 주거와 인간관계에서 거부당하며, 지역사회에서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정신질환자와 '우범자'를 연결 짓는 사회적 인식을 더욱 굳히고, 나아가 정신질환자를 우범자로 상정하여 통제하는 방식의 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질환과 범죄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정신질환자가 범죄 위험성이 높은 집단이라는 인식은 통계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2024 경찰통계연보」의 연도별 정신적장애피의자 현황에 따르면 2024년 전체 범죄 피의자 1,273,921명 가운데 정신적 장애 피의자는 12,482명으로 1.0%에 그친다. 강력범죄에서도 마찬가지다. 2024년 강력범죄 피의자 23,561명 가운데 정신적 장애 피의자는 736명으로 3.1%이다.
경찰의 최신 통계에서도 전체 범죄 피의자 중 정신적 장애 피의자의 비중은 1%에 불과하며, 강력범죄에서도 3.1%로 5%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전체 범죄 피의자 가운데 정신적 장애 피의자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통계에 비추어 볼 때, 범죄 예방 대책을 논의하면서 정신질환자를 특별히 지목하는 것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자를 범죄와 연결하는 접근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범죄 예방 대책이 되기 어렵다.
‘근본적 대책’이 입원 강화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대통령이 말한 '근본적인 대책'이 위험성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사전에 응급입원시키는 등 입원과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을 우려한다.
'위험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입원을 확대하면, 범죄와 무관한 수많은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될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조차 낙인과 강제입원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료와 상담을 피하게 되어, 결국 당사자의 정신건강에도 공공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과 격리·강박의 수준은 지금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며, 지역사회에 사는 당사자들 역시 부족한 지원 속에 고립된 채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것은 입원과 통제의 강화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치료와 지원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넓히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포용적 돌봄복지국가'를 강조해 왔고, 범죄가 발생한 10월 13일에도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마땅한 권리'라고 밝혔다. 정신질환자 역시 그 권리의 주체인 국민이다.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권리 보장과 지역사회 포용을 위한 방안을 함께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낙인이 아닌 포용의 정책을 요구한다.
범죄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인권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시민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함께 지켜야 할 원칙이다.
특히 정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을 없애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그 낙인을 강화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이에 정신질환 당사자단체인 우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하나. 이재명 대통령은 정신질환자를 ‘우범자’와 함께 언급한 발언이 당사자들에게 낙인과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살펴, 발언의 취지를 분명히 밝히고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책임 있는 입장을 표명하라.
하나. 정부는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을 범죄의 원인으로 단정하거나, 사회적 불안을 정신질환자에게 돌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
하나. 범죄 예방 대책은 정신질환 여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와 객관적으로 확인된 요인에 근거하여 수립하고, 응급입원 등 입원 강화 방안은 당사자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하게 검토하라.
하나. 정신질환자를 감시와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치료와 위기지원,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포용적 대책을 마련하라.
하나. 정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할 국가의 책임을 다하고, 정신질환 당사자와 당사자단체의 목소리를 정책 수립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정신질환자가 희생양이 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모두가 안전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논의에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다.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대표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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