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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후... 남은 과제는?

제33회 한마음교류대회 개최… 권리구제·지역정책·AI 활용과 일상 속 권리 개선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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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전남 여수 베네치아 호텔&스위트에서 열린 ‘제33회 한마음교류대회’에서 참석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됐지만, 법에 명시된 권리가 일상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권리 침해를 구제할 절차부터 지역 간 정책 격차, 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장벽까지. 이러한 과제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전남 여수에서 마련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전라남도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여수 베네치아 호텔&스위트에서 '제33회 한마음교류대회'를 개최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 권리의 시대를 열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전국 장애인단체 관계자와 장애 당사자 등 약 500명이 참석해 법 제정 이후의 과제와 AI 활용, 지역사회의 변화 사례를 공유했다.

 

대회는 영암소림학교 학생들의 건반·클라리넷 연주와 여수시장애인나누미합창단의 댄스 등 식전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진 개회식에서는 내빈들의 축사와 함께 장애인복지 유공자 24명에 대한 표창이 진행됐다.

 

▲이동석 대구대학교 교수가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의의와 한계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법에 담긴 권리, 실현을 위한 제도는 과제로

 

첫날 기조강연에 나선 이동석 대구대학교 교수는 '장애인권리협약에 비추어 본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의의와 한계'를 주제로 법 제정의 의미와 과제를 짚었다.

 

이 교수는 장애를 개인의 손상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적 장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도록 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려면 기존의 장애 판정 기준과 서비스 지원체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권리구제 절차가 부족하다는 점을 중요한 한계로 꼽았다. 이 교수는 "권리 조항은 반드시 구제 절차와 연결될 때 비로소 집행 가능한 권리, 즉 현실적 권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권리가 침해됐을 때 시정명령이나 손해배상 등을 요구할 구체적인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지원할 제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당사자 참여도 과제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완성된 법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후속 입법과 예산, 이행 감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나영 장애학실천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총괄기획본부장이 개편된 장애인정책 비교조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어 김나영 장애학실천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총괄기획본부장은 '전국 시·도별 장애인 복지·교육 비교조사'가 올해부터 '장애인정책 비교조사'로 개편된다고 밝혔다.

 

기존 43개였던 평가 지표는 교육청 분야 13개, 지방자치단체 분야 37개 등 총 50개로 확대됐다. 시설 확충을 평가하던 일부 지표를 줄이는 대신 정치적 참여와 지역사회 자립생활, 접근성, 건강과 안전 등 실질적인 권리 보장 수준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김 본부장은 시설의 수보다 운영의 질이 중요하다며, 개편된 지표에 따른 지역별 평가 결과는 자료 수집과 검증을 거쳐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이 된 AI, 나는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패널들이 AI 활용 경험과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일상에 들어온 AI, 활용 가능성 넘어 인권 문제도 살펴야

 

이어진 정책세미나에서는 '일상이 된 AI, 나는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각자의 AI 활용 경험을 공유했다. 발표자들은 행정업무부터 취업교육, 프로그램 제작까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적극적인 AI 활용을 강조했다.

 

황진영 광주광역시바른복지회 대표는 법인의 정관 변경과 행정업무 등에 AI를 활용한 경험을 소개했다. 복잡한 행정 절차를 확인하거나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도움이 되지만, AI가 질문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답하는 경우도 있어 반대되는 질문을 던지며 결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윤호 대전장애인정보화협회 회장은 AI 교육을 통한 취업 사례를 공유했다. 교육생이 AI로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소프트웨어 개발팀에 취업한 경험을 전하며, 더 많은 장애인이 AI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별 교육 기회의 차이가 새로운 정보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정영만 서대문햇살아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책과장은 전문적인 코딩 지식 없이 AI를 활용해 업무용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을 발표했다. 활동지원 급여 계산과 서류 검증을 자동화해 일주일 이상 걸리던 업무를 이틀 정도로 줄였으며, 홈페이지 제작과 지원사업 공고 수집에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김형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미디어센터 편집장은 여수 방문을 앞두고 AI에 물었던 질문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발 사용자로서 여수에서 주의할 점을 물었더니, 바닷바람에 목발이 삭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김형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미디어센터 편집장이 AI의 활용 가능성과 장애인 인권에 미칠 영향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김 편집장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AI의 편리함과 한계를 함께 짚었다. 장애 전문 잡지 <함께걸음>을 제작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 AI로 정책적 이슈를 정리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아 취재 시간을 단축하고 있지만, 장애인의 경험과 관점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잘못된 정보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장애인 지원을 목적으로 개발된 AI가 자칫 감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장애인 인권을 고려한 AI 가이드라인과 장애영향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개발 초기부터 장애 당사자가 참여하고, 장애인단체들이 AI를 충분히 활용하며 개선 의견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후 질의응답에서는 AI에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의 보안 문제가 제기됐으며, 업무용 계정 활용과 개인정보를 외부에 직접 노출하지 않는 프로그램 제작 방법 등이 소개됐다.

 

이번 세미나는 장애인과 장애인단체가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다만 편리함과 활용 가능성에 논의가 집중된 반면, 기술이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규제와 제도적 장치는 상대적으로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AI 활용의 확대와 함께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할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대회 둘째 날 열린 ‘내가 겪은 불편, 내가 바꾼 일상’에서 발표자들이 지역사회의 개선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화면에는 발언 중인 진달범 인천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처장.
 

화장실에서 횡단보도까지, 당사자가 바꾼 일상

 

둘째 날에는 '내가 겪은 불편, 내가 바꾼 일상'을 주제로 장애 당사자와 단체 관계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직접 이끌어 낸 변화 사례를 공유했다.

 

윤차원 한울타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돼 있어도 실제로 이용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전했다. 경남도청 외부 장애인 화장실은 전동휠체어로 들어가면 문을 닫을 수 없는 구조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년간 문제를 제기해야 했다. 윤 센터장은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외출과 사회활동까지 제한한다며 시설의 설치 여부뿐 아니라 실제 이용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옥 한국장애인부모회 충북지회장은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사업의 운영 경험을 소개했다. 종사자 처우 개선과 교육, 개별 공간과 활동 프로그램 마련 등을 통해 당사자에게 적합한 지원환경을 조성한 사례다. 최 회장은 "도전행동이 24시간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며 행동의 원인을 살피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진달범 인천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처장은 인천 부평 지역의 횡단보도와 지하철 이동 편의시설을 개선한 경험을 공유했다. 부평 지하상가 주변에서는 상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반대로 횡단보도 설치가 오랫동안 어려웠다. 그러나 장애인단체의 지속적인 집회와 관계 기관 설득 끝에 약 15년에 걸쳐 주요 지점 네 곳에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진 사무처장은 불편한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장애인단체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횡단보도와 엘리베이터 설치는 단순히 시설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장애인의 통학과 출퇴근, 사회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이동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틀간의 논의는 장애인의 권리를 법에 명시하는 것만큼 이를 일상에서 실현할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장애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만들어 온 사례는 권리 보장이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장의 요구가 앞으로의 제도와 정책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과 사진. 박수찬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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